티없이 맑은 멜로디는 그 곳에 있었다.
언젠가 하던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을 때였다. 알수 없는 미래와 낮아져만 가는 자존심에 마음이 심숭생숭 하던 때 이기도 했다. 일이 있어서 경주로 가는 길. 늘 그렇듯 지루한 운전 시간을 때우기 위해 팟캐스트를 틀려는 찰나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화 주제곡이나 들어볼까? 당시에, 그러니까 내가 한참 만화를 볼 때는 대부분 테레비를 통해 봤기에 오프닝을 넘길 수 가 없었다. 그래서 매일 챙겨보던 작품들은 자연스럽게 주제곡을 외우게 되었는데 그게 20여 년이 지난 가끔 흥얼거리곤 했다.
친구들과 추억팔이를 할 때면 제목만 들어도 자동으로 주제곡이 튀어나오는 덕후 주크박스 수준. 이것도 능력이라면 능력 인지라 몇몇 생각 안나는 곡 들을 완벽하게 외워서 나도 한 번 능력자가 되어보자는 생각에 팟 캐스트 대신 유투브에서 만화 주제곡을 두드렸다. -여기서 만화 주제곡 이라고 하는 건 모두 오프닝 곡을 이야기하는데 그 당시에는 OST나 오프닝이라는 것도 몰랐고 엔딩곡이 들리기 시작한 건 슬램덩크 즈음이었다. 방송이 끝나면 바로 채널을 돌려버리기 일수라 기억나는 건 이것 뿐이다.
평소 좋아하던 주제곡을 몇 곡 듣다가 어느 순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뭐라 말 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폭포 처럼 쏟아져 나온 것이다. 내가 였길 망정이지 대중교통이라면 영문 모를 눈물에 나도 당황하고 사람들도 당황하고 모두 함께 좋게 될 뻔.
그 때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역설적으로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는데 이성적으로는 이해가 안된다는 말이다.
90년대는 흔히 한국 대중문화의 전성기였다고 이야기한다. 서태지와 아이들, HOT 젝키를 필두로 한 엄청난 그룹들이 왔다. 물론 노땅 선배의 흔한 90년대 추억팔이 라고 할 수도...없다! 절대로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 당시는 정말 화려했고 풍성했고 아름다웠고 다양했다. 힘겹게 겨울을 견딘 한국의 현대 문화들이 마음 껏 싹을 피울 때였다. 씨앗들은 나무가 되고 꽃이 되었고 이제 무럭무럭 자라나기만 하면 됐었다. 물론 우리 덕후들에게도 이 시대는 황금기였다.
특히 일본 애니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지금 생각해도 상당한 수준의 한국 애니들이 티비에 방영되었으며...잠깐 지금 할려는 이야기는 아닌데.. 이러다가 또 기승전 원더풀 데이즈가 될지도 모르니 급히 방향을 선회하자.
하여튼 그러한 시기였으므로 다양한 TV만화가 방송됐고 난 주제곡을 넘길 수 없었으므로 결국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노래를 따라 부르며 즐기는 것 뿐. 그리고 그때 가지고 있던, 혹은 지금은 잃어버렸던 어떤 것들이 그 주제곡 들을 다시 듣게 되면서 다시금 뭉클하게 떠오른 것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많이 진정되었다. 이 감정은 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포스팅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우리 함께 떠나요
만화 주제곡의 가사를 천천히 곱씹어 본 적이 있는가? 혹시 유치하다는 간단한 말로 이 명명백백한 세상의 진리를 담은 예술을 그저 흘려보내진 않았나? 두말 할 필요도 없이 너무 나도 단순하다. 그래서 명쾌하다. 인생이 명쾌해진다. 무슨 만화 주제곡 하나에 인생을 논하다니 너무 과장 된거 아니냐고 생각 한다면 적어도 당신은 이 글을 읽지 말고 돌아가는 것이 좋다. 난 지금부터 이 단순한 가사들 속에서 삶을 바라 볼 예정이니까.
삶이란 때론 너무나도 힘들고 복잡한 것이여서(<- 어디서 많이 본 문구?) 대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이 뭔지, 문제가 뭔지, 난 뭔지 알 수 없이 그저 하루하루 눈앞의 것만 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일어나기 싫고 그러다 보면 출근 시간에 늦고 월급을 받으면 밀린 돈들을 내고 그리고 나를 위해 쓰고...티비와 영화에 빠져 살다가 덕질에 빠져 살다가, 속상한 일 을 겪으면 내 신세를 한탄하게 되고...물론 이건 내 이야기다.
그러다가 보면 당연하게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 같다. 혹은 잊고 살게 되는 것 같다.
위에서 내가 말한 노래. 그러니까 다 큰 아저씨가 듣고 눈물을 뚝뚝 흘린 노래는 이것이다.
<푸른 망아지 브링크>
1995년 방영된 <푸른망아지 브링크>라는 작품이다. (한국명 : <요술 망아지 브링크>)
지금은 덕들의 성지 나무위키에서 그 항목이 사라진 비운의 작품이다. 물론 내용도 기억난다. 겁쟁이 주인공 토비는 어쩌구저쩌구 하다가 버스를 타고 이상한 콤비와 귀여운 여자아이와 푸른 망아지….와 마초마초한 운전기사 아저씨랑 아빠를 찾아가는 내용. 늘 그렇듯 대체 왜 아빠가 사차원으로 갔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당시에는 한 만화를 끝까지 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아빠를 만났는지 어떤지도 기억이 안난다. ….
지금은 주제곡에 집중하는 시간이니까 일단 다시 돌아가서 아래 가사를 보자
우리 함께 떠나요.
모험이 기다리는 세계로 다함께 가요
우리 함께 떠나요.
꿈과 희망에 나라로 함꼐 가요.
푸른 망아지 브링크
토비의 친구
아빠를 찾아 사차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반짝이는 내 눈동자에도 빛나는 미래가 있어
무섭지와 브링크와 함께라면
브링크~ 토비에게 용기를!!
마지막 토비에게 용기를~ 부분은 시퍼런 말하는 망아지가 쫄보 주인공이 하도 답답해서 요술로 겁대가리를 상실하게 만들 때 쓰는 주문 따위.
전형적인 똥띵~똥띵~ 하는 멜로디다. 얼핏 들으면 동요같기도 하다. 당시에 만화주제곡은 대체로 동요풍, 혹은 롹~풍으로 구분 할 수 있었는데 대체로 90년대의 만화, 그러니까 좀 올드한 만화들은 거의 대부분이 이런 느낌이었다. 다만 이는 일본이나 한국 만화에 한정대고 디즈니를 내세운 서양의 만화는 조금 다른 느낌을 가지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비교해서 들어보자. <마이티 맥스>를 들으면 감이 올 것이다. 그런데 과연 찾을 수 있을까? 5천년전 이미~ 예정되었던~ ㅋㅋㅋㅋㅋ
<소년기사 라무>와 <마이티 맥스>
특히 라무의 도입부 샤우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
이런 멜로디는 듣는 이로 하여금 경계심을 풀고 현실에서 한 발 떨어지는 효과를 준다. 어른이 들었을 경우 순수했던 그 시절로 조금 다가간다는 말이다. 만약에 이 멜로디로 약발이 안먹힌다면 <호호 아줌마>를 들어보자 이를 듣고도 속세의 찌든 때가 그대로라면 당신은 회생불가능이다. 어서빨리 감정파산을 신청하고 구제코스를 이수하도록 하자. 구제 코스에 대해선 다시한번 언급 하겠다.
자꾸 이야기가 새는 것같지만 큰 흐름은 놓치지 않고 있으니 괜찮다. 뭐 전문 작가도 아니고 주저리주저리 이게 또 블로그의 맛아닌가? 얼레렐ㄹ. 또 ..
우리 함께 떠나요.
모험이 기다리는 세계로 다함께 가요
우리 함께 떠나요.
꿈과 희망에 나라로 함께 가요.
함께 떠나자는 말이 왜 이렇게 그리울까? 학창 시절을 지나면서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이 그리워진다. 같이 축구하고 게임하고 공부하고.. 무언가 기대하지 않고 않고 경험을 공유 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이다. 얼마나 잊고 살았을까.
아마도 내가 좋아하는 무한도전의 여러 특집들이 주는 감동은 바로 그 “함께하는 경험”에 방점이 찍혀있지 않을까?
푸른 망아지 브링크
토비의 친구
아빠를 찾아 사차원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아빠를 찾아 사차원으로 가는. 이라는 아주 명확한 목표 의식
꿈을 잃고 비실대는 사람이 보기에, 혹은 뭔가 열정을 쏟아내고 싶은 대상을 찾는 이들에게
이런 토비의 열정은 분명 부럽다. 물론 그 동기가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건 단지 만화일 뿐이니까.
반짝이는 내 눈동자에도 빛나는 미래가 있어
<나디아>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온다.
-지금 너에 눈에는 희망찬~ 미래에 꿈들이 빛나고 있네~
당신을 향한 무한 신뢰!! 언제인가! 누군가에게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너의 눈에는 반짝이는 미래가 보여” 라고 말해 준다면 아마 울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비판에 익숙해진 내게 조건 없는 사랑의 말이 이렇게 힘이 될 줄이야
무섭지 않아 브링크와 함께라면
브링크~ 토비에게 용기를!!
나도 누군가가 용기를 불어 넣어 줬으면 좋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게 너무나 겁나고 무섭다. 쫄보 등극!! 잃을게 그렇게 많지도 않으면서 말이지. 나에게 용기를!!!!!
함께
얼마 전에 강남역 화장실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두고 남혐, 여혐이라는 이슈가 생겼고 이를 두고 또 다시 편을 갈라 싸우고 있다. 왜 이렇게 서로가 못잡아 먹어서 안달일까?
분노의 대한민국이라는 말이 곳곳에서 들린다.
예전에 만나던 친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사회복지학과를 다니던 그 친구는 조별과제에서 만난 다양한 인간 군상에 대해 이야기 했었다. 과감하게 잘라버리라고 한 나에게 ‘배제하지 말고 함께 가라는 교수님의 말씀이 있어서 노력 중’이라고 했다 나름 삶에 대한 고민을 해온 나라고 생각 했건만 그 말이 나를 되돌아 보게 했다. 나 역시 인간을 생산성으로 판단하고 있지 않았을까? 부끄러웠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함께’이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며 용기의 말을 건네는 티 없이 맑음이다.
어쩌면 영영 잃어 버릴지도 몰랐을 것을 이렇게 라도 찾아서 다행이다.
역시 덕질은 위대하다.
마지막으로 <요술망아지 블링크>를 포함한 몇가지 만화주제곡을 소개 하며 마친다.
<돌고래 요정 티코>
<소년기사 라무>
<마이티 맥스>
한국 만화 역사상 이런 작품이 또 나올가 싶다. 사춘기 소녀를 다룬 애니라니..
곡에선 해봐 해봐 실수해도 좋아~ 라는 부분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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